언어치료에서는 아이가 치료실에서 배운 문장을 잘 말하게 하는 것만큼, 그것을 가정·학교·또래관계와 같은 실제 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가 또한 중요합니다. 그런데 치료실에서는 정확하게 대답하던 아이가 집에서는 같은 말을 하지 못하거나, 그림카드를 보고는 잘 대답하면서 실제 상황에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억 이론이 부호화 특수성 원리(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입니다. 이 원리는 기억이 단순히 머릿속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할 당시 함께 경험한 여러 단서와 연결되어 저장되고 인출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Tulving & Thomson, 1973).
부호화 특수성 원리란 무엇인가요?
부호화 특수성 원리는 어떤 정보를 기억할 때 함께 형성된 단서가 나중에 다시 제공될수록 그 정보를 꺼내기 쉬워진다는 원리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치료실에서 특정 그림카드를 보면서 치료사가 “이게 뭐야?”라고 물을 때마다 “사과”라고 대답하는 연습을 반복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이의 기억에는 ‘사과’라는 낱말뿐 아니라 그림카드, 치료실, 치료사의 질문 방식과 같은 여러 요소가 함께 연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치료실에서 같은 그림을 보며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지만, 집에서 실제 사과를 보거나 마트에서 사과를 보았을 때에는 바로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아이가 ‘사과’라는 낱말을 모른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어떤 단서가 있을 때 그 낱말을 꺼낼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치료실에서는 잘하는데 왜 집에서는 못할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학습한 언어가 특정 상황의 단서와 지나치게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언어치료에서는 아이에게 질문하고 정답을 확인하는 구조화된 활동이 많이 사용됩니다. 이러한 활동은 새로운 어휘나 문장구조를 처음 가르칠 때 매우 유용하지만, 항상 같은 그림·같은 질문·같은 사람에게서만 연습하면 실제 생활에서는 필요한 표현을 스스로 꺼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치료사가 그림을 보여 주며 “친구가 네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져갔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라고 질문했을 때, 아이가 “내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었어. 돌려줘.”라고 잘 대답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실제 놀이터에서 같은 상황이 생겼을 때 아이가 스스로 적절한 말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그림도 없고 치료사의 질문도 없습니다.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파악하고 적절한 말을 기억에서 찾아 직접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치료에서 ‘일반화’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반화(generalization)란 치료에서 배운 기술을 새로운 사람, 장소, 자료와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화는 치료가 끝난 뒤 저절로 나타나는 결과만으로 보기보다, 치료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계획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일반화 연구에서도 다양한 예를 사용하고, 실제 환경의 자극을 치료에 포함하며, 여러 조건에서 학습하도록 하는 방법이 중요하게 제시되어 왔습니다(Stokes & Baer, 1977).
따라서 언어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정답을 맞히게 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배운 언어를 아이가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언어치료에서는 어떻게 일반화를 도울 수 있을까요?
첫째, 같은 목표를 다양한 자료로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크다-작다’를 가르친다면 그림카드뿐 아니라 장난감, 컵, 공, 신발, 실제 주변 사물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질문의 형태를 다양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이게 뭐야?”라는 질문만 반복하기보다 “무엇을 먹고 있어?”, “이걸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어떤 맛일까?”처럼 하나의 낱말을 여러 의미 관계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셋째, 사람과 장소를 바꾸어 연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사에게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자매, 또래 등 다양한 사람과 의사소통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실제 의사소통 상황에서 표현을 사용하게 해야 합니다.
도움을 요청하기, 거절하기, 설명하기, 질문하기, 감정 표현하기와 같은 언어는 실제로 그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사용할 때 의미가 커집니다.
부모는 집에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는 치료실 활동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아이가 배운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치료에서 ‘주세요’를 배우고 있다면 카드로만 “주세요”를 반복시키는 것보다 간식, 장난감, 필요한 물건을 요청해야 하는 실제 상황에서 표현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정답을 말해 주기보다는 상황, 첫소리, 의미와 같은 작은 힌트를 제공해 스스로 기억을 꺼낼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언어치료의 목표는 ‘아는 것’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부호화 특수성 원리는 아이가 어떤 말을 치료실에서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말이 모든 상황에서 자동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언어치료에서는 “이 아이가 이 단어를 아는가?”만 살펴보기보다 **“누구와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단서가 주어질 때 이 말을 사용할 수 있는가?”**를 함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료실에서 배운 언어가 가정과 학교, 친구와의 놀이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될 때, 비로소 언어는 학습한 지식에서 실제 의사소통 능력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Stokes, T. F., & Baer, D. M. (1977). An implicit technology of generalization. Journal of Applied Behavior Analysis, 10(2), 349–367. https://doi.org/10.1901/jaba.1977.10-349
Tulving, E., & Thomson, D. M. (1973). Encoding specificity and retrieval processes in episodic memory. Psychological Review, 80(5), 352–373. https://doi.org/10.1037/h0020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