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치료에서는 보통 아이가 무엇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같은 아이도 어떤 날은 새로운 낱말을 금방 배우지만, 어떤 날은 집중하지 못하고 평소 알고 있던 말조차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단순히 언어능력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크리스토퍼 M. 팔머(Christopher M. Palmer)의 『브레인 에너지(Brain Energy)』는 뇌의 기능을 이해할 때 대사와 에너지라는 관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Palmer, 2022).
이 관점은 언어치료에도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뿐 아니라, 아이의 뇌가 지금 배우기 좋은 상태인가도 살펴보고 있는가?”
브레인 에너지는 뇌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브레인 에너지의 핵심 주장은 정신건강과 뇌 기능을 이해할 때 뇌의 대사와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Palmer, 2022).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포 내 기관입니다. 뇌는 생각하고, 기억하고, 주의를 유지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을 계획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Palmer는 정신질환을 서로 완전히 분리된 문제로만 보기보다 유전, 염증, 호르몬, 수면, 스트레스, 신경전달물질과 같은 여러 요인이 대사 및 미토콘드리아 기능과 연결될 수 있다는 통합적 관점을 제안합니다.
이 관점이 언어치료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말을 듣고 따라 하는 과정만이 아닙니다.
아이가 새로운 낱말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도 상대방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들은 소리를 작업기억으로 유지하고, 그 말과 사물·행동·상황의 의미를 연결하고, 이전에 알고 있던 정보와 통합하여 기억한 뒤, 필요한 순간에 다시 인출해야 합니다.
대화를 할 때는 더 복잡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의미를 이해하고, 이전의 내용을 기억하고, 자신의 대답을 계획하며, 적절한 낱말을 찾아 문장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따라서 실제의 언어 수행은 좁은 의미의 ‘언어능력’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주의집중, 작업기억, 실행기능, 정서조절, 각성 수준, 피로와 같은 여러 조건이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브레인 에너지』는 언어치료를 단순히 언어능력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아이의 전반적인 뇌 기능과 학습 상태까지 함께 살펴보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캡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는 듣기와 말하기뿐 아니라 주의집중, 기억, 실행기능, 정서조절과 같은 여러 기능이 함께 관여합니다.
같은 아이인데 왜 어떤 날은 잘하고 어떤 날은 어려워할까요?
언어치료 현장에서는 아이의 수행이 항상 일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쉽게 대답했던 질문에 오늘은 대답하지 못하거나, 평소 잘 사용하던 낱말이 잘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평소보다 오래 집중하고 새로운 표현을 빠르게 배우기도 합니다.
이럴 때 “지난번에는 했는데 왜 오늘은 못하지?”라고 수행 결과만 보는 것보다 오늘 아이의 상태가 지난번과 무엇이 다른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면은 단순한 휴식 시간이 아니라 학습과 기억을 포함한 뇌 기능과 관련됩니다. ADHD 아동에서도 수면과 각성의 문제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가 보고되어 왔습니다(Cortese et al., 2006).
따라서 치료 중 아이의 주의집중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평소와 다른 언어 수행을 보인다면, 단순히 “모른다” 또는 “할 수 없다”라고 판단하기보다 피로, 수면, 각성 수준, 정서 상태, 과제의 난이도와 주변 환경 등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요인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치료에서는 ‘얼마나 많이’보다 ‘어떤 상태에서 배우는가’도 중요합니다
언어치료에서는 반복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복 횟수만 늘린다고 학습 효과가 반드시 그만큼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이미 지쳐 있고 주의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같은 낱말을 계속 반복한다면 입력은 많아져도 충분한 학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치료사는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과제의 길이와 난이도를 조절하고,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며, 흥미 있는 활동과 어려운 활동을 배치하고, 아이가 다시 참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과제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몇 번 연습했는가?”와 함께 “아이가 실제로 학습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였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많은 활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장 잘 집중하고 배우며 기억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 학습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언어치료사는 무엇을 관찰해야 할까요?
브레인 에너지의 관점을 언어치료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치료 관찰의 범위를 넓히는 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치료사는 아이가 무엇을 틀렸는지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변화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언제 집중력이 가장 좋은가?
- 치료 후반부에 수행이 급격히 떨어지는가?
- 피곤할 때 낱말 인출이 더 어려워지는가?
- 과제 사이에 짧게 움직인 뒤 집중력이 달라지는가?
- 불안하거나 긴장하면 평소 알고 있는 표현도 줄어드는가?
- 쉬운 과제에서 성공한 뒤 어려운 과제로 넘어가면 수행이 달라지는가?
이러한 관찰이 쌓이면 치료사는 단순히 아이가 “할 수 있다/없다”를 판단하는 것을 넘어 어떤 조건에서 가장 잘 배우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브레인 에너지가 언어치료에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
브레인 에너지는 언어치료에 관한 책이 아니며, 이 책의 이론이 언어발달장애의 원인이나 치료 효과를 직접 입증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언어치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새로운 낱말과 문장을 가르치면서 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질문이 하나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아이는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어는 뇌가 수행하는 매우 복잡한 기능입니다. 주의를 집중하고, 기억하고, 의미를 연결하고, 생각을 조직하고, 필요한 말을 찾아 표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인지·정서적 기능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따라서 좋은 언어치료는 아이에게 더 많은 자극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가 가장 잘 집중하고, 가장 잘 기억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그 순간에 의미 있는 언어 경험을 제공하는 것.
브레인 에너지의 관점에서 언어치료를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시사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Cortese, S., Konofal, E., Yateman, N., Mouren, M. C., & Lecendreux, M. (2006). Sleep and alertness in children with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 systematic review of the literature. Sleep, 29(4), 504–511.
Frye, R. E., Rincon, N., McCarty, P. J., Brister, D., Scheck, A. C., & Rossignol, D. A. (2024). Biomarkers of mitochondrial dysfunction in autism spectrum disorder: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Neurobiology of Disease, 197, 106520. https://doi.org/10.1016/j.nbd.2024.106520
Li, D., Miao, C., Wang, D., & Li, C. (2025). Effect of physical activity interventions on executive functions in school-age children with ADHD: A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378, 175–190. https://doi.org/10.1016/j.jad.2025.01.155
Palmer, C. M. (2022). Brain energy: A revolutionary breakthrough in understanding mental health—and improving treatment for anxiety, depression, OCD, PTSD, and more. BenBella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