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분명히 알고 있는 내용을 물었는데도 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부모님은 “아까는 알았는데 왜 지금은 대답을 못하지?”, “집중을 안 한 건가?”, “배운 것을 잊어버린 건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갑자기 질문을 받았을 때 즉시 말로 대답하는 것은 같은 능력이 아닙니다. 특히 언어발달이 느린 아이나 ADHD, 자폐스펙트럼 특성이 있는 아이는 하던 활동에서 벗어나 질문을 듣고, 의미를 이해하고, 알고 있는 정보를 찾아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왜 바로 대답하지 못할까요?
우리는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다가 누군가 갑자기 말을 걸면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복잡한 생각을 잘하고 있었는데도 상대방의 질문에는 곧바로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억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 현재 하고 있던 사고에서 새로운 과제로 전환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인지과학에서는 현재 하던 과제에서 다른 과제로 옮겨 갈 때 일시적으로 반응이 느려지거나 오류가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과제 전환 비용(task-switching cost)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과 상황에 따라 다른 일로 빠르게 전환하는 능력은 모두 인지조절에 중요한 기능입니다(Egner, 2023).
아이에게도 비슷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성인의 몰입 후 반응 지연과 발달장애 아동의 대답 어려움이 완전히 같은 현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알고 있어도 과제가 갑자기 바뀌면 바로 꺼내 쓰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한 비유에 가깝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학교에서 점심으로 뭐 먹었어?”라는 간단한 질문도 아이의 뇌에서는 여러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먼저 하던 행동에서 주의를 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을 듣고 질문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학교’, ‘점심’이라는 정보를 잠시 머릿속에 유지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다음 음식 이름을 떠올리고 적절한 문장으로 만들어 말해야 합니다.
즉, 하던 활동 중단 → 주의 전환 → 질문 듣기 → 의미 이해 → 정보 유지 → 기억 인출 → 단어 선택 → 문장 만들기 → 말하기 과정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아이가 대답하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모른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알고 있는 정보를 찾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인지, 말로 표현하는 과정이 어려운 것인지 구분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언어발달이 느린 아이는 왜 더 어려울까요?
언어발달이 느린 아이에게는 질문을 듣고 정보를 잠시 유지하면서 답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발달성언어장애(DLD) 아동을 대상으로 한 2024년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에서는 일반 발달 아동과 비교했을 때 여러 언어적 작업기억 과제에서 어려움이 나타나는 경향이 보고되었습니다(Niu et al., 2024).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발달성언어장애 아동이 연령이 같은 일반 발달 아동보다 여러 시간 제한 과제에서 처리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경향을 보였습니다(Zapparrata et al., 2023).
예를 들어 아이에게 그림을 보여 주면서 “이 아이는 왜 우산을 들고 있을까?”라고 묻는다고 해보겠습니다.
아이는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살펴보고, 질문을 기억하고,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비가 와서 우산을 들었어요’라는 문장을 만드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때 질문 직후 바로 “모르겠어?”라고 다시 묻거나 치료사가 대신 답해 버리면 아이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 말할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ADHD 아동은 알고 있어도 순간적으로 대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ADHD 아동의 경우에는 단순히 “집중을 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행기능에는 주의조절, 작업기억, 반응억제, 계획, 과제 전환 등이 포함됩니다. 2024년 180개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여러 신경발달장애에서 실행기능의 어려움이 관찰되었으며, 특히 ADHD 아동에서는 주의, 반응억제, 계획 및 작업기억 영역의 어려움이 보고되었습니다(Sadozai et al., 2024).
따라서 장난감을 조립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ADHD 아동에게 갑자기
“아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라고 질문하면 아이는 단순히 기억에서 답 하나만 꺼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활동을 멈추고, 부모에게 주의를 옮기고, 질문을 끝까지 듣고, 질문의 핵심을 머릿속에 유지한 상태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찾아야 합니다.
어느 한 과정에서 부담이 커지면 아이는 알고 있는 내용도 “몰라”, “기억 안 나”라고 대답하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폐스펙트럼 아동에게는 ‘전환’ 자체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자폐스펙트럼 아동에서도 모든 아이가 같은 특징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 아동에게는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이나 사고에서 새로운 요구로 옮겨 가는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과 과제 전환이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2024년 신경발달장애 아동의 실행기능을 비교한 메타분석에서는 자폐스펙트럼 아동이 ADHD 아동과 비교했을 때 set-shifting, 즉 한 사고 규칙이나 과제에서 다른 것으로 전환하는 영역에서 더 큰 어려움을 보이는 경향이 보고되었습니다(Sadozai et al., 2024).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놀이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에게 갑자기 전혀 다른 주제의 질문을 하면 질문의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이전 활동에서 새로운 대화 상황으로 충분히 전환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거나 “빨리 말해”라고 재촉하면 오히려 처리해야 할 정보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대답할 때 조금 기다려 주어야 하는 이유
아이에게 질문한 뒤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먼저 몇 초 기다려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학교에서 누구랑 놀았어?” 라고 질문한 뒤 바로
“민수랑 놀았어? 준호랑 놀았어? 누구랑 놀았어?” 라고 연속해서 질문하면 처음 질문을 처리하고 있던 아이에게 새로운 정보가 계속 들어오게 됩니다.
오히려 질문은 짧고 명확하게 한 번 제시하고, 아이가 생각할 시간을 준 뒤 필요하면
“학교에서… 누구랑 놀았지?” 처럼 핵심 단서를 제공하는 편이 좋습니다.
언어치료에서도 아이가 답을 하지 못했을 때 곧바로 정답을 알려 주기보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정보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인지, 기억에서 찾지 못하는 것인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인지,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른다”와 “지금 꺼내지 못한다”는 다릅니다
아이의 언어능력을 볼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정보를 필요한 순간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충분히 배웠지만 질문을 갑자기 받으면 대답이 늦습니다. 어떤 아이는 첫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지만 그림이나 첫소리 같은 작은 단서를 주면 바로 답합니다. 또 어떤 아이는 선택지를 제시하면 정확하게 고르지만 스스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합니다.
이런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첫 번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암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주의를 전환하고, 질문을 잠시 유지하고, 기억에서 정보를 찾고, 말로 조직하는 경험을 충분히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가 갑자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배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유를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정말 내용을 모르는 것인지, 알고 있지만 아직 다른 생각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 있는 정보를 말로 표현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보다 효과적인 언어치료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gner, T. (2023). Principles of cognitive control over task focus and task switching. Nature Reviews Psychology, 2, 702–714.
Niu, T., Wang, S., Ma, J., Zeng, X., & Xue, R. (2024). Executive functions in children with developmental language disorder: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Frontiers in Neuroscience, 18, 1390987.
Sadozai, A. K., Sun, C., Demetriou, E. A., Lampit, A., Munro, M., Perry, N., Boulton, K. A., & Guastella, A. J. (2024). Executive function in children with neurodevelopmental condition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Nature Human Behaviour, 8, 2357–2366.
Zapparrata, N. M., Brooks, P. J., & Ober, T. M. (2023). Developmental language disorder is associated with slower processing across domains: A meta-analysis of time-based tasks. Journal of Speech, Language, and Hearing Research, 66(1), 325–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