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언스와 언어발달|갓난아기가 배고파 우는 것과 어른이 배고픈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갓난아기는 배가 고프면 웁니다. 어른도 오랫동안 먹지 못하면 배고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사례 모두에서 ‘배고픔’을 경험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경험이 알아차림과 의미, 언어로 이어지는 과정은 같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 센티언스(sentience)입니다.
센티언스란 무엇일까요?
센티언스는 쉽게 말하면 ‘무언가가 나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경험하는 능력’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니콜라스 험프리(Nicholas Humphrey)는 센티언스를 단순한 정보 처리와 구별되는 주관적인 감각 경험과 관련지어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몸에 음식이 부족하다는 생리적 정보를 처리하는 것과,
“배가 고프다.”
“불편하다.”
“무언가 먹고 싶다.”라고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센티언스에서 중요한 것은 몸이나 외부의 변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변화가 ‘나에게 어떻게 느껴지는가’입니다.
갓난아기도 배고픔을 느낄까요?
물론 갓난아기도 배고픔과 관련된 신체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몸의 내부 상태가 달라지고 불편함이 생기면 울거나 몸을 움직이는 등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갓난아기가 성인처럼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라고 자신의 상태를 개념적으로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기에게 먼저 존재하는 것은 ‘배고픔’이라는 말이나 개념이 아니라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적·정서적 경험입니다. 이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몸의 변화
→ 불편한 경험
→ 울음이나 행동의 과정이 먼저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경험이 존재하는 것과 그 경험을 자신의 상태로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느끼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도 일상에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하루 종일 괜히 짜증이 나고 집중이 잘되지 않다가 뒤늦게
“아, 내가 점심을 못 먹어서 그랬구나.”라고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고픔과 그로 인한 불편함은 이미 몸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을 “내가 지금 배가 고프다.”라고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이 언어가 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필요합니다.
몸이나 정서의 변화가 생긴다
→ 어떤 느낌으로 경험된다
→ 그 변화를 자신의 상태로 알아차린다
→ 무엇 때문에 그런지 이해한다
→ ‘배고픔’, ‘불안’, ‘화남’과 같은 의미를 붙인다
→ 언어로 표현한다
앞의 경험은 존재하지만 뒤의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센티언스에서 ‘느낌’ 자체를 이미 의식적인 주관적 경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느끼지만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어떤 감각적·정서적 경험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상태로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지 못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쉽게 말하면,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른의 배고픔은 무엇이 다를까요?
성인은 배고픔을 경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의미를 붙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배가 고프다.”라고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고,“점심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프구나.” 라고 원인을 이해하며,“배가 너무 고파서 힘들어.” 라고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성인의 배고픔에는 감각 경험뿐 아니라 알아차림, 자기이해, 기억, 의미화, 언어가 함께 작용합니다. 따라서 갓난아기와 성인의 차이를 단순히
“아기는 느끼고 어른은 생각한다.”
라고 구분하기보다는, 경험을 자기 상태로 알아차리고, 의미를 붙이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과정이 얼마나 발달해 있는가의 차이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아기의 울음은 처음부터 ‘말’과 같은 의사소통일까요?
아기가 배가 고파 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양육자에게 매우 중요한 신호가 됩니다.
아기가 울면 양육자가 다가와 안아 주거나 수유를 하고, 아기의 불편함은 줄어듭니다. 그러나 초기의 울음을 성인의 말처럼 “내가 배가 고프니 울어서 알려야겠다.”라는 의도적인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초기에는 불편한 경험과 함께 울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경험이 반복됩니다.
불편하다
→ 운다
→ 양육자가 다가온다
→ 먹여 주거나 안아 준다
→ 불편함이 줄어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기의 개인적인 경험은 점차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경험이 됩니다. 즉, 자신의 내부 경험과 타인의 반응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느낌은 어떻게 언어가 될까요?
아기에게 처음부터 ‘배고픔’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몸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구별됩니다.
양육자는 아기의 경험에 말을 붙여 줍니다.
“배고팠구나.”
“맘마 먹자.”
“많이 배고팠어?”
이러한 상호작용이 반복되면서 아이의 내부 경험과 외부에서 들려오는 언어가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발달의 흐름으로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배고픔과 관련된 경험이 생긴다
→ 불편함을 표현한다
→ 양육자가 반응한다
→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반응이 연결된다
→ 비슷한 경험을 점차 구별한다
→ 그 경험에 의미가 생긴다
→ 경험과 단어가 연결된다
→ ‘배고파’라고 표현한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느낌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는 ‘배고파’라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배고픔과 관련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는 그 경험을 새롭게 만들어 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경험을 구별하고, 조직하고, 의미를 붙이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됩니다.
센티언스는 언어발달을 어떻게 다르게 보게 할까요?
이 관점에서 언어발달을 보면 단순히 ‘단어를 많이 배우는 과정’으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경험한다
→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린다
→ 서로 다른 느낌을 구별한다
→ 원인을 이해한다
→ 의미를 붙인다
→ 적절한 단어와 연결한다
→ 타인에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배고파’, ‘아파’, ‘무서워’, ‘속상해’라는 말을 외울 수 있다고 해서 자신의 실제 경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서워’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과, 큰 소리가 났을 때 몸이 긴장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는 지금 이 소리가 무서워.”라고 자신의 경험과 단어를 연결하는 것은 다른 능력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실제로 경험하는 순간에
“배가 고프구나.”
“여기가 아프구나.”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놀랐구나.”|
“기다리느라 답답했구나.”
와 같이 아이의 실제 경험에 언어를 연결해 주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발달장애 아동의 언어치료에서는 왜 중요할까요?
발달장애 아동 가운데는 자신의 감각이나 정서적 상태를 말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이때 중요한 것은 말하지 못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교실에서 갑자기 귀를 막고 자리를 벗어났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이에게는 이미
소리가 불편하다
→ 몸이 긴장된다
→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는 경험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그 경험을 “교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힘들어요.”라고 자신의 상태로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정입니다.
정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친구가 장난감을 가져간 뒤 얼굴이 굳고 행동이 거칠어졌지만,
“나는 화가 났어.” 또는 “내 장난감을 가져가서 속상했어.” 라고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발달장애 아동에게서는
경험은 존재하지만
→ 그 경험을 자기 상태로 명확하게 알아차리기 어렵거나
→ 서로 다른 느낌을 구별하기 어렵거나
→ 왜 그런 느낌이 생겼는지 이해하기 어렵거나
→ 적절한 단어와 연결하기 어렵거나
→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 같지 않습니다.
언어치료는 느낌과 언어 사이를 연결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치료의 목표도 조금 다르게 보게 합니다. 아이에게 ‘화나요’라는 감정카드를 보여 주고 정답을 고르게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의 몸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경험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소리가 나니까 귀를 막았네.”
“몸에 힘이 들어갔네.”
“아까는 불편했는데 지금은 좀 편해?”
“친구가 가져갔을 때 마음이 어땠어?”
이러한 상호작용은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알아차리고, 구별하고, 의미를 붙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즉, 언어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감정 단어의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경험과 알아차림, 의미와 언어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 주는 것
으로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느끼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갓난아기가 배가 고파 우는 것과 성인이 “점심을 못 먹어서 배가 너무 고파.” 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긴 발달 과정이 있습니다. 그 출발점에는 자신의 몸과 세상을 경험하는 센티언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 위에
알아차림
→ 구별
→ 원인 이해
→ 의미화
→ 자기이해
→ 타인과의 공유
→ 언어
가 점차 연결됩니다.
그래서 언어발달을 이해할 때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아이가 이 말을 할 수 있는가?” 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아이는 지금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
“그 경험을 자신의 상태로 알아차리고 있는가?”
“그 느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있는가?”
“그 경험과 적절한 말을 연결할 수 있는가?”
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센티언스의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느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이미 존재하는 경험을 구별하고 의미로 조직하며,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언어치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로 아이의 경험이 알아차림이 되고, 알아차림이 의미가 되며, 그 의미가 언어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